12·3 비상계엄의 밤이 1년을 채웠다. 대통령이 국회와 선관위에 군과 경찰을 투입해 헌정 질서를 뒤흔들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민들은 광장으로 몰려 나와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았고, 국회는 계엄 해제 의결로 내란의 시도를 중단시켰다. 그 이후 탄핵, 조기 대선, 정권 교체까지 숨가쁜 1년이 지나갔지만, 정작 내란 책임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법적 단죄는 아직 시작도 제대로 못 한 상태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장치가 바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가 12월 1일 이 법안을 통과시키며, 내란 청산의 시계가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전담재판부’인가
이번 특별법의 정식 명칭은 ‘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이다. 내용의 골자는 분명하다. 내란 및 관련 특검 사건을 담당할 내란전담재판부를 1심과 항소심 모두에 두고, 영장 전담판사까지 별도로 두어 내란·외환 사건을 집중 심리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내란·외환 범죄의 구속 기간을 최대 1년까지 연장하고, 항소심은 3개월 내에 선고하도록 기한까지 못 박았다.
전담재판부 판사는 9인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2배수로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그 안에서 임명하는 방식이다. 추천위는 헌법재판소장, 법무부, 판사회의가 각각 3명씩을 내는 구조로 설계됐다. 국회나 정당 추천 몫을 배제해 정치권의 직접 개입 가능성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단순히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을 위한 특수 재판부”가 아니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파괴 범죄를 한 묶음으로, 신속하면서도 공정하게 심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내란 특검이 1년 가까이 수사해 20여 명을 기소했지만,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첫 1심 선고조차 내년 1~2월에야 겨우 나올 전망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정의의 시계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내란 같은 국가범죄 앞에서 정의의 시계가 ‘고의로’ 늦춰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지체가 아니라 공범에 가깝다. 전담재판부는 바로 이 지연된 정의, 선택적 정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방파제다.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반론에 대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은 일제히 “위헌”, “재판부 코드 인사”, “사법부 독립 침해”를 외치며 법안 표결 직전 소위를 퇴장했다. 법무부조차 소위에서 “행정부가 사법부 판사 추천에 관여하는 것이 삼권분립에 맞느냐”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비판은 과장된 정치적 프레임에 가깝다. 추천위는 특정 정당 몫이 아니라 헌재, 법무부, 판사회의로 분산돼 있고, 최종 임명권은 대법원장에게 있다. 이미 한국 사법 시스템 안에는 영장 전담판사, 특정 사건 전담 형사합의부 등 사건의 성격에 따라 재판부를 조직하는 관행이 자리 잡아 있다. 내란전담재판부는 그 연장선에서 헌정 파괴 범죄를 한 번 더 분리해 다루자는 제도적 조정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의 재판 구조로, 과연 내란 책임자들에게 헌법이 요구하는 무게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5·18과 12·12 군사반란을 떠올려 보자.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내란·내란목적살인 유죄 확정은 쿠데타 이후 16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그마저도 뒤늦은 특별법과 사회적 격렬한 논쟁 끝에야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역사는 말한다. 악법보다 더 나쁜 것은 무법이고, 무법보다 더 나쁜 것은 선택적 법 집행이다. 내란전담재판부 논쟁의 본질은 “사법부를 정치가 장악하려 하느냐”가 아니라, “이미 정치에 오염된 사법 시스템을 어떻게 다시 헌법의 자리로 돌려놓을 것인가”에 가깝다.
12·3 이후 1년, 왜 아직도 아무도 단죄되지 않았나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은 지금, 내란 사태는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습 국면에 들어섰다. 탄핵과 대선, 정권 교체를 거치며 국정은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중이고, 여론조사에서도 현 정부에 대한 지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법절차는 여전히 출발선에 가깝다. 내란 특검은 수사 기한 연장 끝에 겨우 일부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구형을 마쳤고, 한덕수 전 총리 등 계엄 가담자에 대한 첫 1심 선고조차 내년 1월이 돼서야 나올 예정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핵심 군·정보·치안 라인의 1심 선고는 내년 2월로 예상된다.
1년 동안 시민들은 거리에서, 일터에서,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세웠다. 그러나 법정 안에서는 여전히 “기억을 미루는 공화국”이 반복되고 있다. 내란의 우두머리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시간을 끌고, 재판부가 일정 조정에 허덕이는 사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분열은 그대로 방치돼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적었다. 그 말이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 일정한 시점마다 명확한 ‘단죄의 이정표’를 남겨야 한다. 지금 12·3 내란 사태는 바로 그 이정표를 세워야 할 지점에 서 있다.
국가폭력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12·3 비상계엄을 “국가폭력 범죄”로 규정하며, “나치 전범을 다루듯 살아 있는 한 형사 처벌하고, 상속 재산 범위 내에서 상속인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수준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 발언은 단지 감정적 비유가 아니라, 독일과 남미 등에서 축적된 전환기 정의의 경험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아르헨티나는 군사독재 종식 후 40년에 걸쳐 1500명 이상을 기소하고 장기 재판을 이어가며, 군부의 조직적 범죄를 역사와 법의 언어로 박제했다. 독일 역시 나치 수뇌부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을 시작으로, 수십 년 동안 전범을 추적해 법정에 세웠다.
반면 한국은 12·12와 5·18의 진실을 밝히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고, 어렵게 내린 사법적 단죄조차 사면으로 희석시키는 실수를 반복했다. 그 결과 쿠데타 세력의 일부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냉소가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12·3 비상계엄은 그 과거의 잘못된 ‘학습 효과’를 끊어내야 하는 시험대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그 첫 단추에 가깝다.
내란전담재판부는 ‘정치 재판부’가 아니라 ‘헌법 재판부’가 되어야 한다
물론 전담재판부가 설치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형식만 특별법일 뿐, 내용이 또 다른 정치적 타협과 봐주기로 채워진다면, 전담재판부는 사법정의를 세우는 법정이 아니라 역사를 다시 한 번 배신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내란전담재판부에 요구되는 기준은 분명하다.
첫째, 헌법과 인권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판사들로 구성돼야 한다.
둘째, 재판의 투명성을 최대한 보장해 국민이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책임의 사슬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명령을 내린 우두머리부터 실행한 지휘부, 침묵으로 동조한 권력층까지, 누구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자성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옛 법과 원칙에 기대되면서도, 오늘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내란전담재판부는 과거 군사반란·내란 재판이 남긴 판례와 교훈을 딛고, 다시는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사법적 실험대여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
지금 이 순간에도 12·3의 기억은 피해자와 유가족, 그날 밤 국회와 거리에서 내란을 막아낸 시민들의 몸과 마음에 선명하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는 말처럼, 우리는 1년 전의 어두운 밤과 계속 대화하고 있다. 그 대화가 진실과 책임, 그리고 정의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내란의 밤은 형태만 바꿔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법사위 소위라는 첫 관문을 넘었다. 이제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그리고 실제 재판부 구성이라는 남은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쏟아질 온갖 정치적 공세와 위헌 공포 마케팅을 이겨 내는 힘은 결국 시민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두 번 다시 내란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단 의지일 것이다.
내란전담재판부는 특정 정권의 복수 도구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이 나라는 헌법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는 최소한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지금 이 법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면, 역사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날, 너희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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