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6일간에 걸쳐 2025 전국 종별 신인 선수권대회(청양 체육관)가 열렸다. 이번 대회에서 고등부 전체 10 체급 중 SM 용인대 체육관(대표 홍성민)은 ㅡ65Kg급 김시헌. ㅡ80Kg급 김영광. ㅡ85급 김시후 선수가 SM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불꽃 파이팅으로 상대를 압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3체급을 석권했다. ㅡ70Kg 급에 출전한 김도현은 아깝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종합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합작 대망의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어느덧 가을과는 이별을 준비하고 다가오는 겨울과는 만남을 약속하는 12월이 돌아왔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프로복싱경기장에 홍수환 챔프가 자주 참관해, 그를 지켜본 복서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 한해였다고 자평한다. 지난 11월 8일 용인대학 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복싱경기장에도 홍 챔프가 참관해 그의 지난날 스파링 파트너 였던 원동희와 실로 오랜만에 50년에 감격 적인 해후를 하였다. 지금은 사라진 대호 체육관(관장 김현) 소속의 원동희(68세)는 70년대 중반 홍수환이 소속된 동신 체육관에 원정 홍수환 챔프와 여러 차례 스파링을 펼친 복서다.
2025 전국종별 선수권 종합우승을 차지한 SM 용인대선수들
1975년 용인대학 재학시절 아마추어 전국체전 서울 대표 출신 원동희는 겸허한 인품과 상대에 대한 배려로 후배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복싱인이다. 그와 동행한 임종대(원진체ㅡ수경사)는 1984년 MBC 신인왕 J.페더급 우승자이다. 그는 그해 신인왕전 2회전에서 임종대는 최우수신인왕 후보인 4연승 (4KO) 승을 기록한 하드펀처 김두산 (88체)을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3ㅡ0 판정으로 꺽고 결승에 진출 결승에 김우천 (극동서부)를 꺾고 우승한 차지하였다. 이후 그는 83년 MBC 신인왕전에서 우수신인왕(밴텀급)을 수상한 김용래를 위시하여 표명길 조억기 등 3명의 특급 선수를 차례로 잡고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1987년 3월 동양 페더급 챔피언 박찬목을 2회 KO로 꺾은 강적 안창배와 라이벌전에서도 2회 회심의 일격으로 2회 KO승을 거둔 임종대는 13승(7KO)을 기록한 김진홍(동아)과 대결에서 팽팽한 경기를 펼치다가 막판 다운을 당하고 안타깝게 2ㅡ0 판정패를 당했다. 하지만 정상급 복서로 유감없는 열전(熱戰)을 펼친 일전이었다.
필자는 평소 원동희 선배와 만나면 그의 스승이자 전설적인 복서 고(故) 김현 관장에 대한 추억을 소재로 담화를 많이 나눈다. 김현은 통산 131전 75승(26KO)40패 16무를 기록한 파이터로 101전만에 동양 정상에 올라 프로 전향 단 2전 만에 동양 챔피언 (LH급)에 등극한 민병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 복서 였다. 허버트강 이원석과 라이벌 3총사로 70년대를 풍미한 김현은 통산 131전중 무려 28전을 미국 파나마 괌 나고야 동경 등을 돌며 해외 원정 최다경기를 펼친 주인공이었다. 여기에서 김현의 6년 후배 홍수환 챔프가 복서 출신으로 단 한 차례 대결로 최초 세계 일주한 장면이 떠올랐다. 참고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인물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포루투갈 탐험가 마젤란이고 국내에서는 1896년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했다가 뜻밖에 지구 한 바퀴를 돌게 된 민영환이다.
홍수환의 세계 일주는 1974년 7월 4일 시작되었다. 멕시코의 챔피언 아나야를 13회 역전 KO승을 거두고 WBA 밴텀급 정상에 오른 아놀드 테일러가 1차 방어전을 앞두고 현미경을 들고 가장 만만한 도전자를 고르고 골라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복서가 바로 홍수환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도전자로 당첨된 홍수환은 세계 타이틀을 펼치기 위해 일본 홍콩 스리랑카 세에셀 요하네스버그를 경유하여 종착지인 해와 달이 교대하는 남아공 더반에 36시간에 걸쳐 도착한다. 이대결에서 홍수환은 4차례 다운을 탈취하면서 테일러에 15회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 정상에 올라 김기수 이후 무려 8년 만에 대한민국 2대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경기 후 서울로 출발할 때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미국의 LA. 화와이 일본을 거쳐 세계 일주를 하면서 홍수환은 귀국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7년 11월 지구의 반대편인 파나마라는 먼곳까지 WBA j.페더급 타이틀 결정전 (카라스키야)을 하기 위해 출전하였다.
은퇴 후 홍수환은 1981년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의 트레이너로 활약했다. 국내 최초로 김철호가 3연속 KO승을 기록하면서 방어에 성공해 최고의 트레이너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역마살(驛馬煞)이 낀 홍수환이 1982년부터 한국을 떠나 알레스카로 향한다. 홍수환이 떠나자 표범처럼 강렬한 챔피언 김철호는 곧바로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나약한 염소로 전락 5차 방어 무승부에 이어 6차방어전에서 도전자 오로노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6회 38초 만에 KO패로 타이틀을 날려버렸다.
어쩌면 홍수환의 이 같은 부평초(浮萍草) 같은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예견된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홍수환 챔프의 모친 황농선 여사의 수기를 보면 1950년 6.25 사변 때 서울이 불바다가 된 가운데 지금의 앰배서더 호텔 근처에서 홍수환이 탄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날이 바로 6월 29일 목요일이었다. 점성술로 유명한 영국 동요에 목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먼 길을 가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몰라도 홍수환의 최초의 세계 일주는 어쩌면 태생적(胎生的)으로 운명처럼 이뤄진 작품 같다. 1977년 어느 날 어느 순간 홍수환은 인기 가수 옥희 여사와 짧은 만남과 함께 17년에 걸친 긴 이별의 진통을 겪는다. 그리고 지난 1994년 옥희 여사와 극적으로 재회하면서 국내에 정착(定着) 길고 긴 방황 인생에 마침표를 찎었다.
필자가 홍수환 챔프와 인연을 맺은지도 어느덧 4반세기가 훌쩍 흘러갔다. 언젠가 홍 챔프 자택이 있는 경기도 의왕시 인근에서 오찬을 함께 하면서 담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화제(話題)가 풍부한 홍 챔프여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긴 그때의 감미로운 기억이 새롭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보다 1살 젊은 건강한 홍수환 챔프의 남은여생 한국복싱 부활에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 부탁드린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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