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김성민 발행인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산업의 시작은 모두가 불가능이라 여겼던 도전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만 해도 우리 기술은 미국·일본에 비해 수십 년 뒤처져 있었고, 심지어 “TV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 반도체가 가능하겠냐”는 조롱 섞인 만류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건희 삼성 회장은 눈앞의 수익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수없이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핵심 인재를 모으고 기술 격차를 메우는 데 힘썼고 마침내 1983년 2월 8일 도쿄 한복판에서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도쿄 선언’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던 회의를 깨고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강국으로 이끈 역사적 결단이었다. 기업인의 혜안과 사회적 책임감,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역사적 소명 의식으로 미래를 내다본 결단이 오늘날 국가의 기간산업을 일군 것이다.

이처럼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세우는 비장한 각오는 기업인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위정자와 공직자들도 눈앞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도쿄 선언’에 담겼던 미래지향적 결단과 국가에 대한 책임 의식이다. 당장 표 계산과 이해득실을 넘어, 향후 수십 년을 내다보는 정책을 수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판은 이러한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끝없는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며 국민의 생존권과 미래는 뒷전인 모습이다. 국민을 먹여 살릴 백년지대계는커녕, 눈앞의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에 국민은 지쳐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 역시 미래지향적 결단의 부재를 보여준다. 집값 안정을 위해 많은 전문가가 보유세 신설 또는 대폭 강화 같은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역대 정권 모두 이런 정공법은 피해갔다. 왜일까?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자이고, 강력한 보유세를 도입하면 그들 자신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실제로 한 시민단체 분석에 따르면 국회의원 300명 중 115명(약 3분의 1)이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로 과다한 부동산을 보유해 임대업이 의심된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국회에서 부동산 보유세 인상 논의가 제기됐을 때 여당 의원 중 단 한 명도 찬성 의견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국회의원들이 해마다 자기들 세비(歲費) 인상 안건은 티격태격하지 않고 슬그머니 합의해 통과시키는 불편한 모습을 닮았다. 국민 앞에서는 상대를 향해 큰소리 치지만, 정작 자기들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는 한통속이 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사회 지도층에는 이건희 회장의 ‘도쿄 선언’과 같은 결단과 통찰이 절실하다. 당장의 인기나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백년 대계를 내다보는 역사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 비장한 각오로 미래를 준비했던 선대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 위정자들과 공무원들이 부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소명 의식을 품고 더 나은 대한민국 100년을 위한 길을 열어가길 기대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미래 세대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자 책임 정치 아닐까. 눈앞의 이익을 넘어 먼 미래를 설계하는 용기, 그 비장한 결단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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