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김성민 발행인


대한적십자사의 표창은 특정 신앙을 재단하는 의식이 아니라, 혈액 수급 안정에 실제로 기여했는지라는 공익 성과를 계량해 판단하는 절차다. 최근 대한적십자사가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에게 표창을 수여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즉각적 도덕 판단이 쏟아졌지만,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무엇이 성과로 인정됐는가다. 보건의료의 세계는 감정이 아니라 지표로 움직인다.

팬데믹과 계절적 비수기에 반복되는 혈액 부족 국면에서 대규모 단체 헌혈이 수급선(라인)을 어떻게 붙들어 매는지, 데이터로 이야기해야 한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는 혈액 보유량을 ‘5일분 이상 적정, 5일 미만 관심, 3일 미만 주의, 2일 미만 경계, 1일 미만 심각’으로 관리해 왔고, 국면이 급전하면 공공·민간 단체 헌혈 동원이 필수적으로 작동했다. 이 기준 아래에서 단기간 대량 참여는 재고 일수 회복에 직결되는 공적 서비스다. 표창의 기준은 교리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수급 안정에 대한 실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 점에서 신천지 측 청년봉사단 ‘위아원(WE ARE ONE)’이 보여준 참여 규모는 무시할 수 없다. 2022년 단 24시간 동안 온라인 헌혈 신청 71,121명을 모아 기네스 세계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에만 약 9만6천 명이 실제 헌혈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 숫자는 개별 신도의 미시적 신념이 아니라, 국가 혈액관리 시스템 입장에서 보면 수급 곡선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 대규모 동원이다. 더구나 2025년에도 국내 혈액 보유 일수는 종종 5일선 아래로 떨어지며 ‘관심’ 또는 ‘주의’ 경보가 반복돼 왔다. 이런 환경에서 대형 단체 캠페인이 벌어지면 재고 일수와 병원 공급 안정에 즉각적 효과가 나타난다. 숫자가 말하는 공익을 외면한 채 상징 정치로만 해석하면 정작 환자 치료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팬데믹 초기의 혈장 공여는 더욱 입증 가능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20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대구 신천지 신도들이 세 차례에 걸쳐 누적 3,741명의 혈장 공여를 완료했고, 이는 치료제 개발 연구와 표준물질 확보에 기여했다는 정부·언론 기록이 존재한다. 전혈과 혈장은 용도가 다르지만, 둘 다 공중보건 대응의 기반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위기를 지나온 지금 시점에서 돌아봐도, 대규모 단체 공여가 연구와 임상 생태계에 보탬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자료는 분명하다. 공익의 세계는 추상적 낙인보다 축적된 데이터를 우선시한다.

물론 표창은 절차적 투명성을 요구한다. 추천·심사·결정 과정의 독립성과 이해충돌 검증은 언제나 공개돼야 하고, 표창이 어느 종교 단체의 이미지 세탁 수단으로 오용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절차의 엄정함을 강화하는 것과 성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만약 특정 집단의 대규모 헌혈이 혈액 재고 일수 회복과 지역 혈액원 공급 안정에 실증적으로 기여했다면, 그 공로는 누가 했든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보건의료는 ‘사실 앞의 평등’이 지켜질 때만 신뢰를 얻는다.

핵심은 여기다. 신천지가 정통인지 이단인지는 종교 내부의 교리 논쟁이고, 국가는 정교분리(헌법 제20조) 원칙 아래 공적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행정·정치가 신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국가는 중립성을 잃고 공익 판단의 기준이 흐려진다. 반대로 종교계는 교리 검증과 자정에 집중하면 된다. 사회는 “잘한 것은 잘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할 용기만 있으면 된다. 팬데믹 당시의 혈장 공여, 이후 지속된 대규모 헌혈이 실제 수급 안정에 유효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면, 그 공적은 인정하고 절차는 더 투명하게 다듬으면 된다. 공익의 이름으로 쌓인 수치와 기록을 존중하고, 도덕 비판은 사실 위에 세우는 것, 그것이 정의에 가깝다. 표창을 신앙 심판으로 둔갑시키는 정쟁은 공익도, 신앙도, 결국 시민의 생명도 돕지 못한다. 우리는 공익 성과는 성과대로 칭찬하고, 과오가 있다면 그 또한 엄정히 질책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상식이고, 상식은 언제나 공동체를 살린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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