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2025년 10월호=김지아 칼럼니스트] 맛의 기억에서 철학으로
한국인의 명절과 의례에는 늘 특정한 맛과 향이 따라다닌다. 어릴 적, 설날이나 추석에 온 가족이 모이면 상 위에 놓인 약식의 은은한 향과 식혜의 시원한 단맛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는 단지 ‘맛있다’는 감각이 전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맛 속에는 삶과 건강, 나아가 조상들의 경험적 지혜가 깊이 스며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통 디저트 속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철학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건강과 문화의 언어다.

약식동원(藥食同源) : 음식(食)과 약(藥)의 경계를 허물다
‘약과 음식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사상은 중국 고대 의학서 『황제내경(皇帝內經)』에서 비롯되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상은 질병 치료보다 예방을 중시하고, 계절과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해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생활 속 사상으로 자리잡았다.
이 사상은 단순히 의학 이론에 그치지 않고, 절기·명절·의례 음식 속에 구체적으로 스며들었고, 특히 한국 전통 디저트는 계절과 재료의 변화, 인간의 몸 상태를 함께 고려하는 일종의 ‘식이 처방(食餌處方)’으로 발전하였다.


기능과 맛을 겸비한 전통 디저트
한국 전통 디저트는 후식이 아니라 몸과 계절의 리듬을 맞추는 작은 처방이었다. 그 기능과 의미를 학술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식혜: 엿기름 발효로 생기는 당화효소인 아밀라제가 탄수화물 분해와 소화 촉진을 도와 (한국식품연구원, 2023)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음료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기름진 잔칫상의 더부룩한 속을 풀어주는 전통적 역할을 가졌다.
수정과 : 계피의 신남알데하이드(cinnamaldehyde)와 유제놀(eugenol) 성분 그리고 생강의 진저롤(gingerol)은 항균·항염 작용과 체온을 유지하는 기능을 가져 겨울철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
팥시루떡·쑥떡 : 팥의 사포닌성분이 이뇨와 항산화 작용을 하고 쑥의 클로로필성분은 해독 작용을 수행해 몸의 부종과 독소를 줄이는 기능을 한다.
약식: 찹쌀·대추·밤·잣의 조합으로 탄수화물·비타민·무기질·불포화지방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는 ‘균형식’으로써 단맛 속에 영양학적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상들은 간식으로 단맛을 즐기면서도 그 안에 ‘몸을 돌보는 기능’을 심어놓았다. 이는 단순한 미각 경험을 넘어 생존과 건강을 지탱하는 음식 철학이었다.

현대 영양학의 언어로 읽는 전통
오늘날 연구들은 전통 디저트에 이용되는 재료의 기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대추는 산화질소의 합성을 촉진하는 사이클릭 AMP의 합성을 촉진하여 세포 활성화를 도우며 밤에는 비타민C와 비타민B군이 다량함유되어 있어 면역력증진과 에너지 생성에 효과적이다.
계피의 시신남알데하이드(cinnamaldehyde)와 유제놀(eugenol) 성분 그리고 생강의 진저롤(gingerol)이 항균·항염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도 현대 식품과학이 밝혀낸 결과다. 이러한 연구들은 조상들의 경험적 지혜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 타당성을 갖춘 지식이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뉴트라슈티컬(Nutraceutical)’ 개념은 기능성·예방·치유라는 측면에서 한식 디저트의 철학과 유사하다. 한국의 전통 디저트는 이 글로벌 트렌드의 원조격으로서 연구와 산업화의 잠재력이 크다.

글로벌 웰빙 시장과 한식 디저트
글로벌 웰빙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조,038억달러로 집계되며, 2023년 까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해 약 2조 2,56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건강 중심의 소비 트랜드와 예방적 건강관리 수요 증가가 시장 확대의 핵심 요인이다. 이에 ‘건강+전통+스토리’가 결합된 식품군이 각광을 받고 있다. 부산의 글루텐프리 저당약과 전문점, 개성주악을 도넛처럼 재해석한 ‘코리안 도넛’, 해외에서도 인기 있는 쌍화차라떼·인절미 티라미수 등이 그 예다. 이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전통 속 철학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으면서 확장되는 과정이다.
해외 기업들도 한국 식품 전문 브랜드를 런칭하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스토리텔링은 브랜드 차별화의 핵심이 될 수 있다. 한식 디저트 연구는 전통 지식 보존, 기능성 식품 개발. 문화 콘텐츠 확장의 세가지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철학을 현대 식품과학 및 브랜드 전략과 연결하면 ‘글로벌 힐링 푸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역 식재료와의 결합을 통해 농업·관광·식품 산업까지 연계하는 생태계로 발전 가능하여 단순한 맛의 전파가 아닌 ‘지속가능한 건강문화’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전통의 단맛이 주는 내일의 메시지
한 조각의 약식, 한 모금의 식혜는 단순한 후식이 아니다.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치유하는 언어이자 미래 식문화의 단서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철학은 전통사회에서 음식과 약의 경계를 허물었고, 이제는 현대 과학과 글로벌 시장 속에서 건강과 정체성, 지속가능성으로 통합하는 지혜가 된다. 감각적 즐거움과 건강, 문화적 정체성을 동시에 품은 한식 디저트야말로 K-푸드의 다음 시대를 열 달콤하면서도 힘있는 서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단맛을 다시 찾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생활 철학을 현재의 언어로 읽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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