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애인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는데 다행히 전 애인은 내 입장을 이해해 주었다. 파도처럼 기복이 심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지지해 주는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 페미니스트 정체화와 탈코르셋 실천과 비건 지향, 모두 그의 곁에서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장은나 지음 ㅣ 느린서재 펴냄


[시사의창=편집부] 페미니스트로 정체성을 정한 뒤, 어쩐지 연애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왠지 숨겨야만 하는 일로 느껴졌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된 후, 여자들은 한국 남자들을 보이콧하고, 남자들은 ‘페미’라는 단어를 조롱으로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너 페미야?”라는 조롱과 혐오의 말들을 듣지 않기 위해 때로는 숨기도 하고, 때로는 “그게 뭐”, 라며 더 당당해지려고도 했다. 못생긴 여자들이 페미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서, 오히려 외모에 더 신경 쓰는 날들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서로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혼란스러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다가 “남미새”가 나오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남자에 미친 여자’라는 은어를 희화화한 이 영상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여성을 조롱하기 위해 제작된 콘텐츠였다. 그런데, 남자에 미친 여자, 솔직히 말해서 그 여자가 사실 “나”였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되나? 왜 그 욕망을 숨겨야만 하나? 나의 사랑과 나의 욕망을 계속 숨긴다면, 나는 과연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